1. 서 론
현대 기계화 군대에서 유류 보급체계는 작전 지속능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다. 즉, 야전에서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장시간 운용하려면 대량의 연료를 안전하게 저장·분배할 수 있는 체계가 필수적이다. 미국 등 군사 선진국들은 일찍이 대용량 접이식 연료탱크(collapsible fuel tank)를 개발·운용하여 신속한 연료저장과 공급망 구축을 가능하게 해왔다.[1] 특히 미군은 1990년대에 제정된 MIL-T-52983G 규격을 통해 3,000~50,000갤런급 야전용 연료저장 블래더(bladder)의 설계 및 시험 기준을 표준화했다.[2] 또한, 미군 규정, 규격 등에는 전개 지역에서 연료저장·공급 거점을 설계·배치하는 지침이 상세히 마련되어 있어, 야전 유류 저장소 구축 시 고려해야 할 탱크 간 이격거리, 이중 방호(방유제, 라이너) 설치, 펌프 및 필터 배치, 유지보수 사항 등이 규정되어 있다.[3] 반면 한국군 야전 유류저장 체계는 주로 유조차 및 드럼통 기반의 보급에 의존해 왔으며, 대용량 접이식 연료탱크의 본격적인 도입과 운용은 제한적인 상황이다. 과거 해외 파병 등의 특수 사례를 제외하면, 국내에서는 영구 시설에 의존한 연료저장이나 소규모 임시 저장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었다. 이로 인해 신속 전개 작전 시 연료저장 공간 부족, 설치 시간 지연, 누유 발생 시 대처 미비 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4] 실제로 노후화된 연료탱크의 누유 및 폭발 사고가 잇따르고, 야전에서 대량 연료를 저장할 수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한국군 연료보급체계의 현대화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5]
본 논문은 미군 MIL-T-52983G 규격과 비상작전용 연료시스템 설계지침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한국군 야전 유류저장체계의 개선 방향을 모색한다. 먼저 두 문서에 명시된 설계 기준과 운용 지침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고 항목별로 비교한다. 이를 토대로 현재 한국군 연료저장 운용의 구조적 한계와 문제점을 살펴본 뒤, 모듈형 연료저장 체계 설계 도입, 감시·정비체계의 자동화, 국내 방산업체의 기술 참여 등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러한 방안들은 한국군 연료보급 지속능력을 향상시키고, 잠재적인 환경사고 및 작전 차질을 예방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2. 기술 분석 및 비교 연구
MIL-T-52983G는 미군이 운용한 접이식 패브릭 연료탱크의 표준 규격으로 3,000, 10,000, 20,000, 50,000갤런 용량의 연료저장 블래더에 대한 상세 설계 요구사항과 시험 방법을 규정하고 있다.[2] 이 규격에 따르면 각 용량별 연료탱크의 물리적 치수와 구성 요소가 정의되는데, 예를 들어 3,000갤런 탱크는 약 13피트(약 4m) 정방형에 높이 6피트(약 1.8m) 규모이며 3인치 급유/배출구를 갖추고 있다. 10,000갤런 탱크는 사각형(20×20ft) 또는 직사각형(40×11ft) 형태로 높이 4피트 수준으로 제작되며, 4인치 급유/배출구와 통기밸브를 구비한다. 최대 용량인 50,000갤런 탱크의 경우 경량 단층 코팅 직물로 만들어지며, 충진 시 약 65×25피트 면적에 높이 5.5피트 규모로 팽창한다. 모든 50,000갤런 탱크는 4인치 급유/배출구 2개와 2인치 오버플로우 통기관, ½인치 드레인 밸브 등을 갖춰 대량 급유에 대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또한 각 탱크에는 이동과 전개를 돕는 다수의 운반 손잡이와 예비 패치·수리 키트가 포함된다. 이처럼 MIL-T-52983G는 연료저장 블래더의 치수, 연결구, 부속품까지 표준화함으로써 상호 운용성과 신뢰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재질 측면에서 해당 규격의 연료탱크는 일반적으로 나일론 직물에 강한 합성고무나 폴리우레탄(예: 니트릴 고무, TPU 등) 코팅을 적용한 원단을 사용한다. MIL-T-52983G는 연료와의 화학적 호환성을 중시하여, JP-8 제트연료, 디젤유, 등유 등 군용 연료를 장기간 보관해도 누유나 소재 열화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한다.[5] 실제로 Petro-Shield™ 등 상용 제품들은 이 MIL 규격에 부합하는 TPU 코팅 직물을 사용하며 JP-1, JP-4, JP-8, 등유, 디젤 등 방향족 함량 40% 미만의 연료들을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음이 인증되어 있다. 반대로 방향족 함량이 높은 휘발유 등은 고무 라이너를 손상시킬 우려가 있어 이 경우 별도 규격의 특수 블래더(예: Desert King™ 모델 등)를 사용하도록 구분한다.
MIL-T-52983G는 다양한 연료에 대한 내연성 및 내구성 시험 기준도 상세히 제시한다. 연료별 적합성을 검증하기 위해 연료 침지 시험, 증기 확산율 시험 등을 요구하며, 예를 들어 JP-8 연료 증기 확산율이 일정 수치 이하(하루 1평 방 피트당 수 그램 미만 등)일 것을 규정하여 탱크 표면에 습윤 흔적(wet spot)이 발생하지 않도록 통제한다. 미국 육군 연구소(U.S. Army Research Laboratory, ARL) 보고에 따르면, 후보 직물 중 일부는 이러한 JP-8 증기 투과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탈락 되었으며, 이는 MIL-T-52983G가 연료 증발·누출 방지를 위한 재질 선택에 엄격한 수치를 부과함을 보여준다. 또한 접이식 연료탱크는 전개 시 외부 환경과 물리적 충격에 노출되므로, 직물 자체의 인장강도와 파열강도뿐만 아니라 접합부(seam)의 강도를 중점 검사하도록 요구한다. 예를 들어 연료탱크 봉합 부위에 대한 인장 및 박리 강도 시험을 통해, 연료가 가득 찼을 때 심(seam) 부분이 벌어지거나 누출되지 않아야 한다. 한 연구에서는 연료에 노출된 상태에서는 모든 시험 소재의 심 강도가 양호했으나, 고온의 물 또는 자외선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일부 소재에서 박리 강도가 초기 대비 20% 수준까지 저하되는 현상이 관찰된 바 있다. 이는 뜨거운 환경이나 장마 등으로 블래더 표면이 장기간 물에 잠기거나 고온에 노출될 경우 코팅층-직물층 접착력이 약화될 수 있음을 시사하며, MIL-T-52983G는 이러한 극한 조건에서도 성능을 유지하도록 재질 선정과 제조 공정을 관리하도록 요구한다.
정리하면 MIL-T-52983G는 ① 규격화된 용량별 치수와 구조, ② 연료 호환성을 위한 재질 성능 기준(연료투과 차단 등), ③ 기계적 강도와 내환경성 시험 기준을 통해 야전용 연료저장 탱크의 설계 및 품질을 총괄한다. 이 규격을 만족하는 제품은 군 작전환경에서 대용량 연료를 안정적으로 저장하고, 극한 기온이나 자외선 노출, 연료의 화학작용에도 견디며, 반복 설치·철거 및 이동에도 구조적 무결성을 유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MIL-T-52983G의 이러한 엄격한 표준화는 미군 연료저장·보급체계 발전의 토대가 되었으며, 전세계 다수 국가의 군용 연료 블래더 개발에도 공인된 기준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Fuel System Design Guide for Use in Contingency Operations”로 알려진 미 육군·해병대의 야전 연료시스템 운용 매뉴얼(미 육군 Field Manual 및 미 해병대 교범 등)은 전개식(임시) 유류 공급거점을 구축·운용하는 방법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3] 이 지침은 개별 연료탱크 제품이 아닌 야전 연료저장소(fuel farm) 전체에 대한 설계 요소를 제시하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6] 첫째, 작전 규모에 따른 연료저장소 총 용량 산정 및 모듈 구성 방법을 안내한다. 임무별 예상 연료소모량을 기초로 몇 개의 탱크를 연결할지 결정하고, 필요시 여러 연료 탱크 시설을 결합하여 용량을 확장하는 방법을 다룬다. 둘째, 부지 선정과 탱크 배치의 안전 기준을 상세히 규정한다. 탱크 설치 예정지는 가급적 평탄하고 장애물이 없어야 하며, 연료 시설 간 간격은 최소 50피트 이상 유지하도록 권고한다. 탱크 주변에는 반드시 방호용 흙둑(earth berm)를 구축하여 만일의 누출 시 연료를 가두고 화재 확산을 막도록 한다. 또한 여러 탱크를 운용할 경우 단일 사고로 모두 피해를 입지 않도록, 탱크 시설들 간에는 지형지물을 이용하거나 4마일 이상 이격 배치하는 등 분산 배치를 권장한다. 셋째, 2차 containment로 불리는 라이너(liner)와 저지판을 탱크 하부 및 주변에 설치하여 누유 시 토양으로의 확산을 방지하고 회수 작업을 용이하게 한다. 넷째, 펌프·필터 등 연료 분배체계의 통합 배치이다. 탱크 여러 개를 한데 연결하는 파이프라인, 고정 또는 이동식 펌프 및 여과기, 유조차 하역 시설 등을 어떻게 구성할지 표준 레이아웃을 제시한다. 다섯째, 정기 점검·정비 및 비상대응 절차를 매뉴얼화하여 숙달하도록 강조한다. 예를 들어 연료저장소에는 화재 대비 이동식 소화기와 모래주머니 등을 충분히 비치하고, 주기적으로 연료 누출 대응 및 화재진압 훈련을 실시하도록 명시한다. 전개 거점 운용 시 기상 상황에 따른 특이사항(폭염, 한파 등)에 대한 블래더 관리 요령과 장기간 사용하지 않을 시 블래더를 세척·건조·접어서 보관하는 절차도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MIL-T-52983G가 개별 연료탱크의 기술 성능에 초점을 맞춘 데 비해, 본 비상작전용 연료시스템 설계지침은 실제 야전에서 다수의 연료탱크를 배열하고 운영하는 방법에 방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 매뉴얼은 야전에서 연료 공급 임무를 수행할 임시시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구축·운영할지에 대한 노하우를 제시함으로써, 연료저장·공급 작전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이고자 한다.
앞서 살펴본 두 문서를 종합하면, MIL-T-52983G는 연료탱크 제품의 표준과 성능시험을 규정하고 있고, 비상작전용 연료시스템 설계지침은 연료저장시설의 현장 구축·운영 절차를 다루고 있다. 두 문서는 상호 보완적 관계로, MIL 규격을 충족하는 우수한 연료탱크를 기반으로 매뉴얼의 권고대로 연료저장소를 설계·배치해야 최적의 성능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예컨대 MIL-T-52983G를 만족하는 탱크라도 적절한 간격 확보와 방유 조치 없이 배치하면 위험하므로 매뉴얼의 기준을 따라 설치·운용해야 한다. 반대로 아무리 운용 지침을 준수해도 탱크 품질이 떨어지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반드시 MIL 규격 등으로 신뢰성이 검증된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결국 성능 표준과 운용 표준을 모두 충족시키는 것이 야전 유류저장체계의 목표라 할 수 있다.
표 1은 MIL-T-52983G 규격과 비상작전용 연료시스템 설계지침의 주요 요소들을 항목별로 비교한 것이다.
3. 한국군 야전 연료저장 운용의 현황 및 문제점
한국군의 전시 연료보급체계는 전반적으로 고정 저장시설과 차량 수송에 의존하는 형태로 구축되어 왔다.[7] 평시에는 전국 주요 군부대, 군수지원단 등에 대형 지하 또는 지상 유류 저장탱크(고정식 금속탱크)를 설치하여 전시에 대비한 예비 연료를 비축한다. 이들 중앙 저장소에 보관된 연료는 필요시 철도 유조 열차나 민간 유조선으로 수송된 뒤, 전방으로는 드럼통(용량 200ℓ)이나 군용 유조차를 통해 분배된다. 한국군이 운용하는 전술급 유류 수송 차량은 보통 2~5킬로리터(kl) 용량으로, 예를 들면 육군 K513A1 유조차는 4,540ℓ 용량 탱크를 탑재하여 전차나 항공기에 연료를 공급할 수 있다. 이러한 차량들이 일종의 이동 주유소 역할을 하여 야지에서 전투차량에 직접 급유하거나, 전방 소부대에 드럼통으로 보급해 임시 저장하는 방식이 주로 활용된다. 그러나 이 같은 분산·기동형 보급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차량이나 드럼통 단위로 연료를 운반·저장하면 대규모 부대를 장기간 지원할 대량 예비연료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갑여단의 공격작전을 수일 이상 지속하려면 수백 톤의 연료가 필요한데, 드럼통과 유조차만으로 이를 충당하기에는 보급차량과 작업 인력 소요가 급증한다. 실제로 한국군은 전시에 대비한 야전 대용량 임시 연료저장시설을 거의 보유하고 있지 않아, 연료 보급이 작전의 병목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어 왔다. 과거 일부 부대에서는 해외 파병 등을 계기로 미군으로부터 30,000갤런급 접이식 연료 블래더를 소량 도입하여 시험 운용한 적이 있으나, 이는 일회성 시범에 가까웠고 조직적인 교리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현재는 한국군 야전에는 제한된 수량의 중·소형 접이식 연료 블래더만 존재하며, 그것도 비상용으로 창고에 보관될 뿐 일상적 훈련에서 적극 활용되지는 않고 있다.
한국군이 MIL 규격의 대용량 연료 블래더의 중요성을 인지하고도 적극 도입하지 못한 데에는 몇 가지 현실적 요인이 있다.[8] 첫째는 지리·환경적 제약이다. 접이식 연료 블래더는 설치 시 상당히 넓은 평탄지가 필요하며 주위에 흙둑(berm)을 쌓아야 한다. 그러나 한반도 작전지역은 산악과 구릉 지형이 많고, 민간 경작지 등이 혼재하여 미군 매뉴얼에 이상적으로 묘사된 연료시설 부지를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50,000갤런 탱크 6기를 운용하려면 수천 ㎡ 이상의 평지와 충분한 완충구역이 필요한데, 전방 지역에서는 이만한 공간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 둘째, 극한 기후에 대한 우려이다. 한국의 혹한기 기온은 -20°C 이하로 떨어지고, 한여름은 35°C 이상 폭염까지 경험한다. MIL-T-52983G가 정한 설계 온도 한계는 영하 -32°C 정도까지인데, 국내 혹한 시에는 연료 방출밸브나 호스가 동결되는 등의 추가 변수가 생길 수 있다. 과거 시험운용에서 한겨울 블래더 표면이 지나치게 경화되어 접거나 전개 작업이 힘들었다는 보고도 있어, 한국군 입장에서는 방한 덮개 등 추가 조치 필요성과 관리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9] 셋째, 전문화된 관리·정비 인력의 부재이다. 접이식 연료탱크는 장기간 보관 시에도 소재 열화나 접합부 약화 등을 방지하기 위한 주기적인 점검과 관리가 필요하다. 미군은 기술교범(TMs)에 따라 블래더를 정기 세척·건조하고, 전문 정비 인력을 배치해 수명주기 평가와 패치 보수 등을 시행한다. 반면 한국군에는 아직 이러한 전문 인력이나 절차가 충분치 않아, 한 번 창고에 들어간 장비는 오랜 기간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과거 보급창에 보관되던 접이식 연료주머니를 수년 만에 꺼내 전개하니, 접합부가 약화되어 펼치는 도중 찢어지거나 누유된 사례가 보고되었다(비공식 보고). 이는 보관 환경 관리(온도, 자외선 차단)와 정기 점검체계 부재로 인한 문제였다. 그 결과 해당 장비는 신뢰할 수 없다는 인식이 생겨 현장에서 기피하는 악순환도 일부 나타났다. 넷째, 운용 경험 부족과 교리 미정립이다. 새로운 물자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그것을 뒷받침하는 전술 교리와 훈련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군에는 야전 연료시설 운영에 대한 교범이나 전술 개념이 아직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 연료 블래더를 어디에 얼마나 배치하고, 언제 전진 배치하거나 철수시킬지 등의 시나리오가 명확하지 않으며, 막상 도입하더라도 유사시 혼선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군은 해안 양륙 시 해병대 AAFS(Amphibious Assault Fuel System), 내륙 공급 시 육군 TPT(Tactical Petroleum Terminal) 등 임무별 표준 세트를 정해두고 운용하지만, 한국군은 지금까지 “연료를 필요한 지점까지 차량으로 가져다 준다”는 수준으로, 세밀한 연료 전개 시나리오를 발전시키지 못했다. 이러한 교리적 격차로 인해 새 장비 도입에서 우선순위가 밀리거나, 도입하더라도 현장에서 적극 활용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와 같이 한국군 야전 연료보급체계는 대형 임시 저장능력의 부재, 환경적 어려움, 관리 인프라 미흡, 운용개념 부족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현대전 양상에 부합하지 않는 구조적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
현재 한국군 연료저장 운용의 또 다른 약점은 사고 감시 및 대응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점이다.[6] 고정 연료탱크의 경우 과거 여러 사고를 겪으면서 안전장치와 누유 센서를 비교적 잘 구비해 왔으나, 야전 임시 저장의 경우 여전히 인력의 육안 감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드럼통이나 소형 연료 탱크에서 서서히 연료가 새어나가도 별도 센서나 경보 없이 나중에야 발견하는 사례가 있다. 접이식 연료탱크도 누유 발생 시 눈으로 식별되기 전까지 알아채기 어려운데, 현재 한국군은 라이너 저면 누유 감지 케이블이나 압력 강하 모니터 등의 도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반면 미군은 블래더 운용 시 바닥 라이너 아래에 소량의 연료도 감지되는 센싱 케이블을 배치하거나, 일정 시간 압력 변화를 자동 모니터링하여 미세 누출 여부를 파악하는 장비를 연구 및 적용해 왔다. 이러한 자동화된 감시장비가 없으면 사람의 순찰에만 의존하여, 야간이나 격오지 환경에서는 작은 누출이 장기간 방치될 위험이 있다. 이는 연료 손실은 물론 토양·수질 오염으로 이어져 2차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유지보수 체계의 부재도 문제이다. 미군의 경우 앞서 언급한 기술교범과 전문팀에 의한 주기적 점검 및 정비가 제도화되어 있으나, 한국군에는 그런 전문인력이나 절차가 없어 한 번 설치된 야전 연료시설에 문제가 생기면 응급조치에 그칠 공산이 크다. 실제 훈련 중 드럼통에서 대량 누출사고가 발생했을 때 임시방편으로 모래를 부어 막거나 오일패드를 덮는 정도로 대응하고, 사후 분석이나 재발 방지 대책은 체계화되지 않았던 사례가 있다(0사단 00대대의 훈련 사례). 접이식 블래더의 경우도 만약 큰 누출이 발생하면 연료를 회수하고 해당 탱크를 폐기하는 것 외에 뚜렷한 대응책이 없는 실정이다. 사례를 통해 보면, 한 지원부대에서 보유 중이던 5,000갤런 연료 블래더를 시험 전개했을 때 상부 통기밸브 주변 직물에 기름에 젖은 어두운 반점(wet spot)이 나타난 일이 있었다. 이는 연료 증기가 미세하게 새어 나와 응축된 것으로 큰 누출은 아니었으나, 적절히 조치하지 않으면 코팅층이 들뜨거나 균열로 진행될 수 있는 징후였다. 그러나 당시 해당 부대에는 이 현상의 원인과 위험성을 판단할 전문지식이 부족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결국 몇 주 후 동일 부위에서 코팅 박리(delamination)가 발생했다.[9] 이처럼 초기 징후를 포착하고 선제 정비하는 체계가 없다 보니 작은 문제가 커져 장비 손실로 이어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또한 야전 연료저장 관련 훈련 및 대비태세 면에서도 개선 여지가 있다. 미군은 주기적으로 연료유출 대응 모의훈련과 화재진압 훈련을 실시하여 유사시 즉각 조치 능력을 배양하고 있다. 한국군도 일부 대규모 탄약·유류 영구시설에서는 소방훈련을 하지만, 야전 부대 단위에서는 이러한 훈련이 체계적이지 못하다. 특히 군단급 이상 규모로 야전 연료저장 시설을 운영해 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여러 탱크 동시 화재나 대량 유출 상황에 대한 공병·화학 지원부대 및 민간 소방당국과의 협조 계획도 미비하다. 이는 실제 작전 시 연료 지원부대와 유관 부대들 사이 공조의 어려움으로 나타날 수 있다. 또한, 한국군 야전 유류저장 운용은 예방 및 대응 시스템의 미흡으로 인해 위험요인을 내재하고 있다. 첨단 센서나 자동화 장비의 도입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정기점검 절차와 교육·훈련 체계부터 보완이 시급한 실정이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제시한다.
4. 개선방안
앞서 비교 분석한 바와 같이, 한국군 야전 유류보급 능력 강화를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모듈형 연료저장 및 공급체계의 도입이다. 미군은 이미 MFS(Modular Fuel System)라는 이름의 신형 연료체계를 개발하여 실전 배치하였다. MFS는 대용량 연료 블래더를 대체하여 이동식 모듈을 활용하는 개념으로, 2,500갤런(약 9,460ℓ) 용량 탱크랙 모듈(Tank Rack Module, TRM) 14기와 펌프·필터 일체형 모듈 2기로 구성된다.[10] 이를 통해 약 35,000갤런의 연료를 빠르게 전개할 수 있으며, 모듈들은 표준 팔레트 규격이어서 전술차량으로 신속히 운반·배치가 가능하다. 각 TRM은 견고한 금속 프레임 안에 연료탱크가 내장된 구조로 되어 있어, 별도의 중장비나 공병 지원 없이도 HEMTT(LHS)나 PLS 트럭 등을 이용해 손쉽게 적재·하역할 수 있다. 특히 MFS 모듈은 연료가 가득 찬 상태에서도 차량 적재·회수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전개 후 연료를 다 쓰지 못해도 탱크를 방치하거나 폐기하지 않아도 된다. 기존 접이식 블래더는 일단 충전하면 이동이 어렵고 철수 시 남은 연료를 폐기하거나 다른 용기로 옮겨야 하므로 연료 손실과 시간이 발생했는데, MFS는 이러한 비효율을 해결한 것이다. 또한 MFS의 Pump Rack Module (PRM)에는 600 GPM(분당 약 2,270ℓ)급 고성능 펌프와 여과기가 내장되어 있어 최대 8개 지점에 동시 주유하거나 4개 대형 장비에 벌크 급유를 할 수 있다. 즉 별도의 연료 “bag farm”(토지에 블래더 여러 개 전개) 없이도 모듈 단위로 저장·분배가 이루어지며, 연료 시설 구축과 철수에 드는 시간과 노력을 크게 단축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군도 이와 유사한 모듈형 연료체계를 도입·개발할 것을 제안한다. 구체적으로 한국군 보유 표준 야지 수송차량(5톤 또는 10톤 군용트럭)의 적재 능력에 맞춘 연료모듈을 개발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평소에는 해당 모듈을 이용해 연료를 수송하다가, 전개지에 도착하면 차량에서 내려놓고 바로 임시 저장탱크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모듈 프레임에는 간이 지지대와 신속 연결구를 마련하여, 여러 모듈을 상호 연결하면 하나의 연료저장 시설처럼 작동하도록 설계한다. 예를 들어 2,500갤런 모듈 4개와 펌프모듈 1개를 세트로 운용하면 약 10,000갤런 규모 연료저장소를 1~2시간 내 구축할 수 있고, 필요 시 동일 세트를 증설하여 용량을 배가할 수도 있다. 이러한 모듈식 접근의 장점은 확장성과 기동성이다.
모듈형 연료체계는 한국 지형과 부대 구조에도 부합한다. 접이식 블래더는 설치·철거에 많은 병력과 시간이 들지만, 모듈식은 최소 인원으로 차량 적재 및 하역만으로 전개가 가능하다. 산악 지역에서도 도로를 따라 모듈을 운반하고 평탄한 공터에 내려놓기만 하면 되므로 별도 공병 지원 없이 운용할 수 있다. 또한 연료를 모두 소진하지 않았더라도 모듈을 바로 적재해 다른 위치로 이동시킬 수 있어 전선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한국군의 기동작전 특성상 연료 보급 거점을 수시로 옮겨 전방 추진해야 하는데, 모듈식 체계가 이를 가능하게 해준다.[11] 아울러 모듈 내부 연료탱크는 두꺼운 프레임으로 보호되므로 야지에서의 피탄이나 손상 위험이 블래더 보다 적다. 즉 적의 포격 파편이나 차량충돌 등에 대한 생존성이 높다.
국산 모듈형 연료체계를 개발함에 있어 전제되어야 할 것은 MIL-T-52983G 등 국제 표준의 충족이다. 모듈에 내장될 연료탱크는 MIL 규격의 설계·재질 기준을 만족해야 하며, 연결 호스와 밸브 등 부품도 NATO 호환 규격을 따라야 동맹군과의 상호운용성이 보장된다.[12] 또한 설계 단계에서부터 공군 항공수송 적재기준(air transportability)을 고려해 C-130, CH-47 등으로 공중 수송 가능하도록 크기와 무게를 제한해야 한다. 이러한 사항들을 종합 평가하여 시제품을 제작한 뒤 야전 테스트를 거치면, 향후 한국군 자체 표준 장비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표 2는 제안하는 모듈형 연료체계와 현 한국군 연료보급 방식의 주요 요소를 비교한 것이다.
야전 유류저장체계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첨단 센서 및 ICT 기술을 도입하여 기존 사람에 의존하던 부분을 자동화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제안되는 것은 연료 누출 감지 시스템의 구축이다. 현재 민간 주유소나 대형 유류 저장탱크에 적용되는 전자식 누유 센서와 자동 탱크게이지(Automatic Tank Gauging, ATG) 기술을 군용 임시 연료시설에도 응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접이식 연료 블래더용으로 개발된 연료 누출 감지 케이블(sensor cable)을 방유 라이너 바닥에 배치하면, 연료가 극소량이라도 닿는 즉시 저항값 변화로 감지하여 경보를 울릴 수 있다. 또한 실시간 질량 균형(mass balance) 모니터링 기법을 활용하면 탱크의 입력 및 출력 유량과 재고량을 지속 측정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누출도 자동으로 판별 가능하다.[13] 미 국방성의 SERDP 연구 프로그램에서는 직경 50m 이상의 대형 연료탱크의 ±0.2% 수준 초미세 누출까지 탐지하는 LRDP(저압차 계측) 시스템을 개발한 바 있으며, 이러한 기술을 소형 이동식 연료모듈이나 접이식 블래더에도 축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IoT 기반으로 모든 센서 데이터를 연동하여, 연료저장소 책임자에게 누출 경보가 즉각 전파되고 원격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통합 모니터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단 보급대대 본부에서 태블릿이나 PC를 통해 전개지 연료탱크들의 재고, 압력, 누유 여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면, 24시간 감시체계를 인력 추가 없이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야간이나 악천후에도 연료시설을 상시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게 해준다. 둘째, 정비 이력 관리의 디지털화이다. 현재는 블래더 한 기마다 제조일자, 사용기간 등을 수기 기록하거나 운용자 기억에 의존하는 수준이지만, 향후에는 RFID 태그 또는 QR 코드를 활용해 각 연료탱크의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연료탱크에 부착한 RFID에 최근 점검일자, 검사 결과, 남은 사용연한 등을 입력하고 휴대 단말기로 현장에서 곧바로 스캔·조회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예측정비(Predictive Maintenance) 알고리즘을 도입하면 온도 변화, 사용 횟수 등 운용 데이터를 바탕으로 블래더의 수명을 예측하고 교체 시기를 사전에 경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탱크는 혹한을 5회 겪었으므로 예상보다 수명이 단축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식의 평가를 AI가 제시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군수사령부 등 상위 기관에서도 접속 가능하게 만들어, 전군의 야전 연료저장 자산 현황과 상태를 중앙에서 파악·관리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부대 간 예비자산 공유나 신속 지원을 가능하게 하여 운영 효율을 높이고, 동시에 노후 장비의 적기 교체로 안전사고 예방에도 기여할 것이다. 또한, 센서가 연료 재고와 누출 여부 등을 감지하여 실시간으로 지휘소에 전송하고, 이상시 경보를 발령한다. 자동 게이지 및 감지기술의 도입은 연료시설 관리 인력을 크게 절감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 원격 감시 및 무인화 경계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이다. 야전 연료저장소는 적의 파괴나 테러 표적이 될 수 있으므로 지속적인 경계가 필요한데, 이를 인력 대신 기술로 보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열화상 카메라를 장착한 소형 드론이나 고정 CCTV로 연료탱크 주변을 자동 순찰하며 온도 변화를 감시하면, 야간에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누유된 연료의 온도차나 화재 징후(국지적 과열)를 포착할 수 있다. 드론에 누출 감지 센서를 탑재하여 주기적으로 저장소 상공을 비행시키면 접근이 어려운 구역까지 빈틈없이 점검할 수도 있다. 그리고 연료 펌프·밸브 등에 원격 차단 기능을 부여하여, 이상징후 감지 시 현장 인력이 도착하지 않아도 중앙 통제소에서 연료 흐름을 즉각 차단하도록 한다. 이러한 원격 제어는 대규모 연료유출 시 2차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필수적이다. 더 나아가 고정식 포말 소화장비를 연계하여 화재 발생 시 자동 초기 진압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물론 이러한 감시·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초기 비용과 기술 인력이 필요하다.
제시된 개선방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내 방위산업체들의 적극적인 기술 참여와 국산화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히 한국은 관련 소재·부품·시스템 분야에서 상당한 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 우선 연료탱크 소재 측면에서 살펴보면, 국내 화학기업들이 폴리우레탄 코팅 직물이나 합성고무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14] 실제로 과거 방위사업청 주도로 야전 정수용 대형 물탱크를 국산화한 적이 있고, 몇몇 업체는 군용 연료저장백 개발 경험도 있다. 이들이 MIL-T-52983G에 준하는 내유성·내구성 소재를 개발하거나 해외 기술을 도입한다면, 충분히 국산 대용량 연료 블래더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국산화를 추진할 때 초기에는 해외 기준 인증을 받는 것이 관건이므로, MIL 규격 시험을 국내 공인시험소에서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면 향후 수출까지도 겨냥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듈형 연료체계 부문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과거, 이미 유조차량과 펌프 장비 등을 제작한 이력이 있어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다. Leonardo DRS의 MFS 제품의 경우 미 육군에서 아직 대량 배치하지 않아 시장성이 크지 않은 상황인데, 한국이 이를 한발 앞서 국산화하여 한국군에 도입하고 운용 경험을 쌓는다면 향후 미군이나 동맹국에 역제안(역수출)하는 기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기동전을 대비하는 중동, 동남아 등의 국가에 모듈형 연료체계는 매력적인 솔루션이 될 수 있어, 수출 품목으로도 잠재력이 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제품의 신뢰성을 입증할 만한 충분한 테스트와 운용 실적이 뒷받침되어야 하므로, 개발 초기 단계에서 군과 업체가 공동으로 시제품 평가와 개선을 반복하는 민·군 협력개발 형태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감시·자동화 시스템 분야에서는 국내 IT/전기전자 기업들의 역할이 기대된다. 누유 감지 센서나 원격 모니터링 소프트웨어는 이미 민간 석유화학 플랜트 등에 활용되는 기술이므로, 이를 군사용으로 도입하고 군 통신망과 연동하는 작업을 통해 비교적 단기간 내 솔루션을 마련할 수 있다. 오히려 해외 제품보다 국내 통신환경(LTE 기반 군 통신망 등)에 맞춘 커스터마이징이 필요하므로, 중소 IT기업들이 방산 분야로 진출하는 교두보가 될 수도 있다. 국방부의 국방혁신4.0 계획에 따라 각종 군수품에 IoT와 AI를 접목하려는 시도가 증가하는 가운데, 야전 연료저장체계도 그 시범 분야로 선정해 볼만하다. 예를 들어 "모듈형 연료체계 + IoT 모니터링 패키지"를 통합 개발하여 방위사업청의 혁신 과제로 추진하면, 군과 민간의 우수 기술을 결집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국산화의 또 다른 이점은 군수지원 자립성의 확보이다. 연료저장 관련 장비를 외국에 의존하면, 유사시 수급 제한이나 수출 통제 등으로 정작 필요한 때 신속 조달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15] 반면 국내 생산 기반을 갖추면 전시 동원 등 비상상황에도 유연한 대처가 가능하다. 또한 부품 수급이나 정비 면에서도 용이해져 전반적인 수명주기 비용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이를 위해 방위사업청, 국방기술품질원 등이 중심이 되어 필요한 기술지도와 시험 인증을 지원하고, 민간의 혁신 기술을 국방에 끌어들이는 오픈 플랫폼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정리하면, 한국군 야전 유류저장체계의 개선은 국내 관련 산업의 발전과 맞물려 있다. 소재-부품-완제품-ICT에 이르는 밸류체인상의 여러 주체들이 협력하여 도전한다면, 머지않아 한국군만의 혁신적인 연료보급체계를 구축함과 동시에 세계 시장에 수출하는 국산 방산품으로 성장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5. 결 론
본 연구에서는 미군의 MIL-T-52983G 규격과 비상작전용 연료시스템 설계지침을 비교·분석하고, 이를 통해 한국군 야전 유류저장체계의 문제점을 진단하여 개선방안을 도출하였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MIL-T-52983G는 접이식 연료탱크의 설계·시험에 관한 엄격한 표준으로, 여러 크기의 연료 블래더에 대해 재질, 구성, 성능 기준을 명시하고 있다. 이 규격에 부합하는 연료탱크는 JP-8 등 군용 연료를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도록 낮은 연료투과율과 높은 기계적 강도를 지니며, 표준화된 치수와 인터페이스를 통해 군수물자 상호 운용성을 확보한다. 한편 비상작전용 연료시스템 설계지침은 야전에서 다수 연료탱크를 활용해 연료저장·공급 거점을 구축하는 방법을 다루는 운용 매뉴얼로서, 탱크의 배치 간격, 방호 시설(흙둑, 라이너), 펌프·필터 장비 구성, 정기 점검 및 사고 대응 절차 등을 포괄적으로 제시한다. 두 문서를 비교한 결과 전자는 제품 자체의 기술 기준, 후자는 현장 운용 절차 기준으로서 상호 보완적임을 확인하였다. 둘째, 한국군의 현행 야전 연료보급체계는 대형 접이식 연료저장장비의 부재, 드럼통과 유조차에 의존한 제한적 저장능력, 전문적인 유지보수·감시체계 미흡 등의 문제가 있었다. 이는 미군이 수십 년간 운용하며 축적한 연료저장 시설 설계 및 운영 노하우와 대비되는 부분으로, 한국군 역시 현대전에 부합하는 연료저장 능력 확충이 시급함을 보여준다. 특히 대규모 기동작전이나 해외 파병 시 신속 전개형 연료저장 모듈과 안전관리 체계를 갖추지 못하면 연료 보급이 병목이 되어 작전 지속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있다. 셋째, 개선방안으로 모듈형 연료체계 도입, 감시·정비 자동화, 국산화 추진을 제안하였다. 모듈형 연료체계는 미군 MFS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한국군 환경에 맞게 소형화·최적화함으로써, 연료보급의 기동성과 효율성을 크게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감시·정비 자동화는 센서와 ICT 기술을 활용하여 누유 조기 경보와 예방정비를 구현함으로써 대형 사고를 방지하고 장비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방안이다. 국산화 측면에서는 국내 기업들의 소재·부품·시스템 역량을 결집하여 신뢰성 높은 연료저장 장비를 개발·생산함으로써, 군의 요구 충족은 물론 향후 수출 산업으로도 육성할 수 있음을 논의하였다.
결론적으로, 야전 유류저장체계의 현대화는 단순히 장비 몇 종을 교체하는 문제가 아니라 군수지원 패러다임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안전하고 기동적인 연료보급은 전장의 승패를 좌우할 군대의 혈관이다. 본 연구의 비교 고찰과 제안들이 한국군 연료보급체계 개선의 밑거름이 되어, 머지않아 한국군도 자체적으로 신속 전개 연료기지를 구축 및 운영하며 작전을 뒷받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한국군의 종심작전 지속능력과 연합군 간 상호운용성이 강화되고, 나아가 국내 방위산업 기술 발전에도 기여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기를 전망한다.





